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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편집 2024-06-2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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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려(范蠡)는 오나라와 월나라의 춘추전국시대 마지막 패권에 정치적 군사적으로 깊이 개입된 인물로 토사구팽(兎死狗烹)을 예견한 훗날 장량(장자방)의 롤모델이 된 인물이다. 월왕 구천이 최후의 패권을 쥐자 용퇴(勇退). 공성용퇴(功成勇退), 성공불거(成功不居), 지지(知止)를 실천했다. 용감하게 물러나고 성공했으니 물러나고 성공한 자는 머무르지 않으며 멈춰서야 함을 알았다. 

그는 조용히 물러나 산동성으로 가서 농사를 지어 막대한 부를 일궜으나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발해만 쪽으로 이주하여 물류업으로 엄청난 부를 일구고는 또 나눠주고 은둔하였다고 하는 데 그는 정치적, 군사적, 재력적으로 인생의 3모작을 성공한 보기 드문 대장부(大丈夫)라 할 수 있다. 범려의 성공 이면에는 젊은 시절의 천하를 주유하면 터득한 경험, 오자서, 월왕 구천, 오왕 부차, 손무, 문성, 백비 등 당대 출중한 인물들과의 직,간접적 교류를 통한 동기부여, 정보의 중요성을 일찍 인식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있었고, 계연이라는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 사물에 대한 안목에다 확고한 자기철학이 있었기에 삼취삼산(三聚三散)이라는 멋들어진 고사와 더불어 厚德(군자는 덕으로서 재물을 얻는다)의 표상이 된 것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성인(聖人)하면 석가모니와 공자를 들지만 이 사람 없이 공자를 생각할 수 없는 이가 바로 자공(子貢)이다. 가난한 공자가 어떻게 천하를 주유하였으면 제후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엄격한 신분사회인 당시를 생각하면 자공의 부와 명성으로 이루어 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공은 상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일군 후 춘추시대의 제후들이 앞다투어 교류하기를 청하는 그야말로 대부호였다. 정원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예를 표하는 분정향례라는 제후급 의전을 받으면서 공자사후 그의 언행을 정리한 논어나 유가를 학파로 만드는 결정적 계기는 그의 富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진시황을 만들어낸 여불위 또한 전국시대의 혼란과 전쟁을 활용한 장사로 엄청난 부를 일구어 혼란했던 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 중요한 기회를 만든 장본인이다. 여불위는 사람에 대한 투자를 실천한 선구자였던 셈이다. 

 

- 3화 예고 : 전국시대 천하 치생(治生)의 비조(鼻祖) '백규(白圭)'

 

* 위 칼럼은 HPS investment 대표 컨설턴트月評 님의 소중한 원고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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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厚德, 군자는 덕으로서 재물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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