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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화. 평범속의 진리, 부의 근간은 근검절약
    부(富)의 근간은 근검절약 평범속에 진리가 있다. 근검절약이야말로 재원(財源)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사기>는 이러한 근검절약의 좋은 전통을 소개하고 있다. 백규는 '재산을 움켜쥘 시기가 오면 마치 맹수와 맹금(猛禽)이 먹이에게 달려드는 것처럼 민첩했지만' '음식을 탐하지 않았고 욕망의 향수를 절제하며 기호(嗜好)를 억제하고 극히 소박한 옷만 입으면서 해마다 그를 위해 일하는 노예들과 동고동락했다.' 사사는 '100대의 수송용 수레를 가지고 있었고 천하의 각 군국 무역에 있어 그가 일찍이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조(曺)의 병씨는 '야금업으로 흥기해 수만금의 부호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집은 부자 형제가 규약을 제정해 엎드리면 줍고 하늘을 쳐다보면 받아서 천하의 모든 곳에 고리대금업과 무역을 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들은 재산이 왕후와 비견될 정도였지만 오히려 검소한 생활을 유지했다. 선곡 임씨는 그 부가 몇 대에 이르렀지만 자신의 신분을 낮추고 겸손했으며 절약을 숭상하면서 스스로 힘써 농사와 목축 일을 했다. 그는 가훈을 정해 자신의 밭농사와 목축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면 입지도, 먹지도 아니하고 공적인 일이 완결되지 않으면 절대로 술을 마시거나 고기를 먹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그는 마을에서 본보기가 되었고, 부유해져서 황제로부터도 존중받았다. 성실한 노력, 자신만의 장점 발휘 원래 농사는 가장 우둔한 업종이지만 진양(秦楊)은 농사로써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부를 모았다. 도굴(盜掘)은 본래 법을 어기는 일이지만 전숙(田叔)은 그것으로써 부를 일으켰다. 도박은 비열한 업종이지만 환발(桓發)은 이것을 통해 부를 이루었다. 행상을 하며 물건을 파는 것은 대장부가 하기에는 천직이지만 옹(雍)의 악성(樂成)은 오히려 그것에 의지해 부유해졌다. 동물의 유지를 판매하는 것은 치욕을 느끼게 하는 일이지만 옹백(雍伯)은 이 일로써 천금의 이익을 얻었다. 장(漿)을 파는 일은 아주 작은 장사에 지나지 않지만 장씨(張氏)는 그것으로써 천만금의 재산을 모았다. 칼을 가는 일은 보잘것없는 평범한 기술이지만 질씨는 대귀족처럼 진수성찬을 먹을 정도의 생활을 누렸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일에 전심전력해 비로소 부를 모을 수 있었다. * 위 칼럼은 HPS investment 대표 컨설턴트月評 님의 소중한 원고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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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7
  • 8화. 과감한 역발상과 합리적 시장 예측
    부,투자,자산,화식열전,백규,시세,시장,역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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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30
  • 7화, 신속한 결정과 과감한 실천, 그리고 모범을 보이다.
    부,투자,자산,화식열전,백규,시세,진단,상술,결단, 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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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2
  • 6화. 냉철하고 담대한 용인술과 좌고우면하지 않는 확고한 자기철학
    냉철하고 담대한 용인술 도간(刀間)의 경우는 더욱 전형적이다. 제나라의 풍속은 노예를 낮고 비천하게 여겼지만, 오직 도간은 그들을 아끼고 중시했다. 교활하고 총명한 노예는 주인들이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대상이었지만, 오직 도간만이 그들을 받아들이고 또 이용해 그들을 파견함으로써 자기를 위해 고기잡이나 제염을 하도록 하거나 혹은 상업에 종사하게 해 이익을 얻도록 했다. 그러면서 노예들을 관리들과 교류하게 했고, 갈수록 그들에게 커다란 권한을 맡겼다. 마침내 그가 이러한 노예들의 힘에 의해 가문을 일으키고 커다란 부를 쌓아 재산이 수십만 금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관직을 받느니 차라리 도간의 노복이 되겠다’라는 속담까지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도간이 노복 스스로의 부를 쌓게 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위해 모든 힘을 다하도록 만들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도간은 교활한 일부 노예들의 본성을 활용함으로써 노예들 스스로도 부자가 되었고, 자신 역시 엄청난 거부가 되었다. 일부 성격이 좋지 못한 사람이라도 좋은 지도자가 이끄는 ‘상황’과 ‘교육’의 힘에 의해 자신에게도 이익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을 주는 일을 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확고한 자기철학 백규는 자기만의 독특한 상술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경영 원칙을 여덟 글자로 만들었다. 즉, “인기아취, 인취아여(人棄我取, 人取我予)”라는 것으로서 바로 “사람들이 버리면 나는 취하고, 사람들이 취하면 나는 준다”라는 뜻이었다. 구체적으로 상품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서 아무도 구하지 않는 그 기회에 사들인 뒤, 수중에 있는 상품의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가격이 크게 오르는 그 기회에 판매하는 것이다. 어느 날 많은 상인이 모두 면화를 팔아넘겼다. 어떤 상인은 면화를 빨리 처분하려고 가격을 헐값으로 팔기도 했다. 백규는 이 광경을 지켜보고 부하에게 면화를 모두 사들이도록 했다. 사들인 면화가 너무 많아서 다른 상인의 창고를 빌려서 보관할 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면화를 모두 팔아넘긴 상인들은 이제 모피를 사들이느라 혈안이 되었다. 본래 그들은 누구에게서 들은 소식인지는 몰랐지만, 앞으로 모피가 크게 팔릴 것이고 겨울에 사람들이 아마도 시장에서 살 수도 없을 것이라는 소문이 크게 돌았었다. 그런데 당시 백규의 창고에는 때마침 좋은 모피가 보관되어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백규는 모피의 가격이 더 오를 것을 기다리지 않고 모든 모피를 몽땅 팔아 큰돈을 벌었다. 뒤에 면화가 큰 흉년이 들었다. 그러자 면화를 손에 넣지 못하게 된 상인들이 면화를 찾느라 야단법석이 되었다. 이때 백규는 사들였던 면화를 모두 팔아 다시 큰돈을 벌었다. 백규의 ‘인기아취, 인취아여(人棄我取, 人取我予)’의 경영 원칙은 일종의 상업 경영의 지혜이며, 그것은 맹목적으로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 7화 예고 : 신속한 결정과 과감한 실천, 그리고 모범을 보이다. * 위 칼럼은 HPS investment 대표 컨설턴트月評 님의 소중한 원고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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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2
  • 5화. 화식열전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시세의 정확한 파악과 엄격한 진단 시장 수요를 조사해 ‘시기에 맞춰 비축하고’, 수요·공급의 규율을 활용해 큰 이익을 얻는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계연은 ‘가뭄이 들 때 배를 준비하고, 홍수가 들 때 수레를 준비하였고’, 범여는 ‘여시축(與時逐; 때에 맞추어 따라가다)’했으며, 백규는 ‘때의 변화를 살피는 것’을 즐겨했다. 이 모두 시장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시장 수요를 조사해 ‘시기에 맞춰 비축하고’, 수요·공급의 규율을 활용해 큰 이익을 얻는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백규는 때의 변화를 즐겨 관찰하고 ‘사람들이 버리면 나는 취하고, 사람들이 취하면 나는 버린다’라는 원칙에 따라 곡물이 익어가는 계절에 그는 양곡을 사들이고, 비단과 칠(漆)을 팔았으며 누에고치가 생산될 때 비단과 솜을 사들이고 양곡을 내다팔았다. 백규는 상품이 계절에 따라 시장에 나타나는 이러한 틈을 교묘하게 이용해 커다란 이익을 얻었다. 선곡 임씨가 구사한 치부(致富)의 방식은 백규의 그것과 달랐지만 효과는 동일했다. 임씨는 전쟁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곧 식량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진나라 말기 호걸들이 모두 앞을 다투어 금과 옥을 차지할 때, 임씨는 반대로 땅굴을 파고 그곳에 식량을 저장했다. 과연 전쟁이 계속되자 백성들이 농사를 짓지 못해 쌀값이 만금에 이르렀다. 이때 임씨는 저장된 식량으로 호걸들의 금은과 바꿔 큰 재산을 모았다. 또한 다른 부자들은 모두 앞을 다투어 사치했으나 임씨는 오히려 자신의 신분을 낮추고 겸손했으며 절약을 숭상하면서 스스로 힘써 농사와 목축업에 종사했다. 논밭과 가축도 다른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모두 싼값으로 매입했지만 오직 임씨만은 비싸고 우량한 것을 매입했다. 그들 가문은 몇 대에 걸쳐 모두 커다란 부호로 살았다. - 6화 예고 : 냉철하고 담대한 용인술과 좌고우면하지 않는 확고한 자기철학 * 위 칼럼은 HPS investment 대표 컨설턴트月評 님의 소중한 원고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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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09
  • 4화. 중국 최초 여성 부호, 파촉의 과부(寡婦) 청(淸)
    사마천의 사기는 여성경제인인 과부(寡婦) 청(淸)에 대한 일화도 소개하고 있는데 청은 염색과 약물제조에 쓰는 붉은 광석을 거래하여 당대의 거부가 된 사람으로 진시황은 그녀를 제후의 예로 대우했다는 것은 당시 상공인에 대한 대우가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서 부(富)가 사회적 지위를 결정한다는 명언을 떠올리게 한다. 탁씨(卓氏)는 지역의 정세와 풍토를 잘 살펴 부를 이룬 인물로 진시황의 통일 후 이민정책 시 남들이 주목하지 않은 지역을 선택하는 과감한 판단으로 틈새시장을 잘 혜아려 제철업으로 성공한 인물로 평가받는데 오늘날의 지역균형발전에 기여하고 뛰어난 정책응용능력을 보여준 예라 할 수 있다. 조한(刁閑)은 사업에 있어 용인술의 극치를 보여준 인물로 노비를 기용하는 기발한 발상으로 부를 축적하고 유지하였는데 생선과 소금을 거래하는 사업 속성 상 도적의 무리로부터 물건을 보호하고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 거칠고 용맹한 노비를 책임자로 고용하여 그들의 부를 보장해주면서 신용과 안전을 지킨, 현대로 치면 용인술의 대가이면서 자회사를 성과주의로 운영했던 기원 전 인물이라 더욱 흥미로울 뿐 아니라 오늘날 물류업의 핵심을 꿰뚫었던 선각자로 손색이 전혀 없다. 사마천은 “부를 일구는 데로 정해진 일이 없고, 재물에도 주인이 없다. 재능 있는 자에게는 재물이 모이고, 능력이 없는 자에게서는 순식간에 흩어지고 만다.”라고 하였다.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부귀해진다. 세상의 이치도 알고 돈도 많은 사람을 부자(富者)라고 하고, 쌓아둔 돈을 그다지 많지 않으나 세상의 이치를 알아서 돈을 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을 교자(巧者)라 했고, 남들이 보기에는 돈이 있을지라도 세상의 이치를 몰라서 항상 부족해 하는 사람들은 빈자(貧者)라고 했고, 세상의 이치도 모르고 돈도 없는 사람을 졸자(拙者)라고 했다. - 5화 예고 : 화식열전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 위 칼럼은 HPS investment 대표 컨설턴트月評 님의 소중한 원고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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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8
  • 3화. 전국시대 천하 치생(治生)의 비조(鼻祖) '백규(白圭)'
    상성(商聖)으로 불리는 백규(白圭)는 주나라 사람으로 시기 변화에 따른 물가의 변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세상 사람들이 버리고 돌아보지 않을 때에는 사들이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고자 할 때에는 팔아 넘겼다. 또한 풍년이 들면 곡식을 사들이는 대신 의복과 가구를 팔아넘기고, 흉년이 들면 누에고치를 사고 곡식을 팔아 넘겼으며 자연의 변화에 따른 풍년, 흉년의 예측에 따라 거래를 하여 평균 그의 재산을 해마다 배로 불렸다. 거친 음식을 달게 먹고 욕심을 억제했으며 검소하게 옷을 입고 노비들과 고락을 함께 했지만 행동해야 할 때는 맹수나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 했다. 백규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사업을 배우고자 했으나, 임기응변의 지혜도 없고, 결단하는 용기도 없으며, 베풀 줄 아는 어짊도 없고,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키는 지조도 없는 자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한다. 무관(無冠)의 제왕(帝王)으로 손색이 없는 백규는 “시류의 변화를 잘 살폈고, 검소했으며, 노비들과 고락을 함께하는 의가 있었고, 임기응변의 지혜와 결단의 용기, 베풀 줄 아는 어짊, 지켜는 지조”가 있었다고 하며 후대인들은 백규를 상성(商聖), 또는 財神으로 칭송했다. 백규의 부에 대한 철학은 “남이 버리면 나는 취하고 남이 취하면 나는 버린다” 그리고 智, 勇, 强, 仁으로 간단히 요약해볼 수 있다. 계연(計然)은 범려의 스승으로 짐작되는 인물로 '경제치국(經濟治國)'을 강조하며 상인의 최소한의 양심으로 서민들의 물가안정에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준 인물로 유명하다. 계연은 가뭄때 배를 준비하며 홍수때 수레를 준비하는 순환에 따른 유비무환과 재물과 화폐는 물 흐르듯 돌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값이 오르면 오물을 버리듯 팔고, 값이 내리면 珠玉을 얻듯이 사들여야 한다는 것이 계연이 주장하고 실행한 富철학의 요체이다. - 4화 예고 : 중국 최초 여성 부호, 파촉의 과부(寡婦) 청(淸) * 위 칼럼은 HPS investment 대표 컨설턴트月評 님의 소중한 원고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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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1
  • 2화. 厚德, 군자는 덕으로서 재물을 얻는다
    그는 조용히 물러나 산동성으로 가서 농사를 지어 막대한 부를 일궜으나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발해만 쪽으로 이주하여 물류업으로 엄청난 부를 일구고는 또 나눠주고 은둔하였다고 하는 데 그는 정치적, 군사적, 재력적으로 인생의 3모작을 성공한 보기 드문 대장부(大丈夫)라 할 수 있다. 범려의 성공 이면에는 젊은 시절의 천하를 주유하면 터득한 경험, 오자서, 월왕 구천, 오왕 부차, 손무, 문성, 백비 등 당대 출중한 인물들과의 직,간접적 교류를 통한 동기부여, 정보의 중요성을 일찍 인식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있었고, 계연이라는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 사물에 대한 안목에다 확고한 자기철학이 있었기에 삼취삼산(三聚三散)이라는 멋들어진 고사와 더불어 厚德(군자는 덕으로서 재물을 얻는다)의 표상이 된 것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성인(聖人)하면 석가모니와 공자를 들지만 이 사람 없이 공자를 생각할 수 없는 이가 바로 자공(子貢)이다. 가난한 공자가 어떻게 천하를 주유하였으면 제후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엄격한 신분사회인 당시를 생각하면 자공의 부와 명성으로 이루어 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공은 상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일군 후 춘추시대의 제후들이 앞다투어 교류하기를 청하는 그야말로 대부호였다. 정원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예를 표하는 분정향례라는 제후급 의전을 받으면서 공자사후 그의 언행을 정리한 논어나 유가를 학파로 만드는 결정적 계기는 그의 富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진시황을 만들어낸 여불위 또한 전국시대의 혼란과 전쟁을 활용한 장사로 엄청난 부를 일구어 혼란했던 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 중요한 기회를 만든 장본인이다. 여불위는 사람에 대한 투자를 실천한 선구자였던 셈이다. - 3화 예고 : 전국시대 천하 치생(治生)의 비조(鼻祖) '백규(白圭)' * 위 칼럼은 HPS investment 대표 컨설턴트月評 님의 소중한 원고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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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4
  • 1화. 사마천 사기 화식열전(貨殖列傳)을 통해 본 '부의 법칙'
    1. 厚德, 1년을 잘 살려면 농사를 짓고 10년을 잘 사려면 나무를 심고 100년을 잘 살려면 덕을 베풀어라. (厚德 : 두터운 심덕(心德). 또는 두터운 덕행(德行). ‘두터운 덕’으로 순화(醇化)) 사마천의 사기열전은 총 130장으로 백이숙제의 고사부터 자서전 성격의 태사공자서 까지 수많은 인물들을 망라하여 기록해 놓았다. 화식열전은 129장째로 재산을 뜻하는 화(貨)와 불린다는 의미의 식(殖)을 합쳐 춘추시대부터 한나라 초기까지 상업과 공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인물들의 삶과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어떻게 돈의 흐름을 파악하고 원리를 찾아서 부를 일구고 누렸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등장인물의 면면을 보면 우리가 아는 인물들이 다수이나 의외의 경우도 있는바 사마천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고 오늘날 중국의 도약과 성장이 굳건한 뿌리에 기인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간략하게나마 소개 해 볼까 한다. 먼저 낚시꾼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강태공은 젊은 날부터 다양한 상업 활동에 종사했고, 천하를 떠돌며 지역의 특성과 문화를 체험하여 오늘날 산동반도인 제나라 재상에 봉해지자 지형과 풍토에 맞는 상공업을 장려함으로써 제나라를 부유한 국가로 만들 수 있었다. 제나라초기의 황폐한 발해만의 바닷가를 바닷소금을 제조해 내륙지방에 팔고, 부녀자들을 모아 길쌈을 하게 해 방직업을 일으켜 춘추전국시대의 초대 패자(霸者)가 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제나라가 춘추전국시대의 최초의 패자이자 진나라 통일전까지 절대강자의 지위를 놓지 않았던 결정적 이유로 관중의 富民富國정책을 들 수 있다. 사마천의 본보기이기도 한 관중은 젊어서부터 장사를 해서 망하기도 하고 여러차례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절친 포숙아의 양보와 추천으로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비범함과 특출한 역량은 낭중지추가 되어 정치군사적 재능과 상공업중심의 과감한 정책실행을 도모해 나가는데 근간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백성이 부유해야 국가가 부유해진다“는 확고한 신념과 “인간은 부유해야 비로소 명예와 염치를 안다”로 요약되는 富에 대한 그의 예리한 성찰은 현대에서도 금과옥조로 남아있다. - 2화 예고 : 춘추전국시대 마지막 패권의 종지부 '범려(范蠡)'와 자공(子貢) * 위 칼럼은 HPS investment 대표 컨설턴트月評 님의 소중한 원고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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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7
  • 인간 내면의 움크린 욕망 '부(富)'을 마주한다
    연재에 부쳐 서양에 마키아벨리가 있다면 동양에는 사마천이 있다. 둘 다 인간의 본성과 욕망의 문제를 우회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함으로서 때로는 찬사를 또 때론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그 생명력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와 닿는다. 특히 사마천은 부(富)역시 인간 본성과 욕망의 문제이며, 신분과 권력의 상관관계에서 해석하였다. 사마천 개인도 친구를 옹호하다가 역린(逆鱗)을 건드려 속죄금을 낼 돈이 없어 궁형(宮刑)의 치욕을 겪었다. 때문에 자신의 아픔을 딛고 쓴 <사기(史記)> 10대 명편인 ‘화식열전(貨殖列傳)’에는 출신 성분이 아주 낮은 노예, 목장주인, 과부, 재상, 책사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재산을 불려 개인의 행복과 권세를 누린 사례를 예증하면서 ‘부’가 얼마나 자신의 가치를 변화시키는지 파고들었다. 사마천은 제아무리 신분이 높은 왕이나 제후나 대부들도 늘 ‘가난을 근심(患貧)’했으니, 일반 서민의 근심은 당연하다고 보았다. 士農工商의 신분질서 의식에서 과감히 벗어난 사마천은 아껴 쓰고 부지런히 생업에 힘쓰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강조하면서도 개인의 능력에 따라 빈부 격차가 벌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교묘한 재주를 지닌 자는 돈이 많고 꾀가 없는 자는 돈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일정한 수익창출만 하는 농업이나 공업보다는 변동성이 많아 자산 가치 확장성이 큰 상업을 최고의 위치에 두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자가 된 사람은 반드시 기이함을 활용하여 승리했다(富者必用奇勝)”고 전략적 측면에서 접근했다. 이제 화식열전의 대문을 열고 편안하게 나의 내면에 움크리고 있는 욕망을 마주볼 시간이다. * 위 칼럼은 HPS investment 대표 컨설턴트月評 님의 소중한 원고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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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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